탕누어, 한자의 탄생

메모 2015. 3. 22. 23:49

소통과 단절이 동시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학은 줄곧 병 속의 편지와 같은 처량한 느낌을 지녀왔다. 소식을 병 속에 담아 먼 곳에 존재하는 미지의 인연(공동의 기억)을 가진 사람에게 흘려보낸다. 여기에는 권력을 독점하려는 의지도 전혀 필요치 않고, 다른 사람들을 빈부와 지우(知遇)의 차이로 구분하려는 오만함도 필요치 않다. 문자 암호의 본질은 우리가 사용할 문자와 그 전달 여부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독자를 구분하거나 암호를 해독할 대상을 찾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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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ity suffereth long, and is kind; charity envieth not; charity vaunteth not itself, is not puffed up,
Doth not behave itself unseemly, seeketh not her own, is not easily provoked, thinketh no evil;
Rejoiceth not in iniquity, but rejoiceth in the truth;
Beareth all things, believeth all things, hopeth all things, endureth all things.
Charity never faileth: but whether there be prophecies, they shall fail; whether there be tongues, they shall cease; whether there be knowledge, it shall vanish away.
For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sy in part.
But when that which is perfect is come, then that which is in part shall be done away.
When I was a child, I spake as a child, I understood as a child, I thought as a child: but when I became a man, I put away childish things.
For now we see through a glass, darkly; but then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but then shall I know even as also I am known.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1 Corinthians 13:4-13, KJV)

 

사랑은 오랫동안 참으며, 온화하고, 사랑은 질투하지 않고, 사랑은 스스로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굴어도 부적절하게 행동하지 않고, 자기의 몫만을 찾지 않고, 쉽게 동요하지 않고, 악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당함을 즐거워하지 않으나 진리를 즐거워합니다.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희망하고, 모든 것을 인내합니다.
사랑은 절대 없어지지 않지만, 예언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힘을 잃을 수 있습니다. 언어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끝날 수 있습니다. 지식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파편적으로 알고, 파편적으로 예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것이 올 때, 그 후 부분적인 것은 완전해질 것입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 나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이해하고, 아이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나는 유치한 것들을 걷어치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유리를 통해서 어둡게 봅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것입니다. 지금 나는 일부분만을 압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심지어 지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셋을 나란히 놓으면, 이것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한국어 성경도 버전이 여러 개가 있지만, 영어 성경은 더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게 킹제임스버전(KJV)이랑 뉴인터내셔널버전(NIV)인데 흔히들 KJV는 원어 성경에 좀 더 가깝고 문체가 유려해 문학적으로도 아름다우며, NIV는 쉬운 영어로 되어 있어 어학용으로 추천할 만하다고 한다. 물론 그런 특징이 있다는 것만은 잘 알고 있었당. 어릴 때부터 두 권 다 집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 차이를 식별하면서 읽을 수 있게 되기까지 이만큼의 세월이 걸릴 줄은 몰랐지(ㅋㅋㅋㅋ)

그건 그렇고, 여기저기서 쪽글을 읽다가 우연히 일어 버전으로 이 구절을 보고 너무 좋아서 킹제임스 버전을 뒤졌는데- 아, 어릴 때 멋도 모르고 줄줄이 외우던 구절들이 이런 내용이었나, 싶은 거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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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과 공포(shock and awe)', 원래 기습작전을 가리키는 군사용어다. 슬라보예 지젝

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운영 원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한 바 있다. 주제들

로 하여금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도록 만드는

시스템, 여기서 두려움의 핵심은 경쟁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예감이다. 양성 중에 있는

노동력의 소유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노동력이 제대로 판매될 수 있을지(혹은 이른바

인적자본에 투자한 만큼 적정한 수익률을 확보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노동력을 판매

하는 데 성공한 이들은 그 판매가 지속될 수 있을지 불안하며, 다시 은퇴 이후의 삶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을 지킬 수 없을까 봐 불안해하

고, 못 가진 자는 못 가진 것을 얻고 싶어 안달한다. 경쟁해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

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강박'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적정한 수

준의 강박을 갖고 경쟁에 몰두할 때 그 집단의 생산성, 효율성, 경쟁력(혹은 그 무엇

이라 부르건)은 극대화된다는 것이 경제학 교과서의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반대로 독

점이 나쁜 까닭은 경쟁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경쟁력, 나아가 어느 정도의 강박을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 그

미묘한 줄타기 속에서 우리의 삶은 흘러간다. pp.122-123


'아메리칸 드림'이 상징하는 능력주의, 즉 능력에 바탕을 둔 공정한 경쟁이라는 믿음

은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일정 부분 신화였고 이데올로기였

지만, 일정 부분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믿음이 흔들릴 때, 그리

고 완전히 무너질 때, 역설적으로 한국 사회는 '선진' 사회가 될 수 있다. 다른 이들

의 성공이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고 이미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는 성공을 얻기 위한 '

능력'조차 쌓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오히려 사회는 '체념의 균형'에 도달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pp.275-276

 

데이비드 하비의 도시권에 대한 정의: "일상생활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모든 사람들의

권리". 도시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노동에 종사한 모든 사람은 자신이 생산한 것에

대한 집단적 권리는 물론 어떤 유형의 도시 공간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어야 하는지

를 결정할 집단적 권리까지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데이비드 하비,『반란의 도시』,

에이도스 pp.233-234)  pp.280-281

 

그런데 도시권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꼭 반자본주의 투쟁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

다. 이를테면 일터에의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 주거지에서 일터까지 통근에 걸리는 금

전적·비금전적 비용의 복구를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 틀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열악한 주거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빈곤층과 젊은 세대의 주거권에 대한 사회적 보장

은 자본주의 국가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노동력의 원활한 재생산이 그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노동력 재생산이라는 개념에 포함되

는 쇼핑이나 여가조차도 점점 더 개인의 시간과 금전비용을 소모하도록 만드는 구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도 자본주의의 틀 속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 (중략) 요컨대 비굴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삶 혹은 먹고사는 것 때문에 생겨나

는 비굴함을 최소화하는 것은 평등주의적 열망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을

통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pp.281-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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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h Wharton

메모 2015. 1. 25. 14:39

"I despair of the Republic! Such dreariness, such whining sallow women, such utter absence of the amenities, such crass food, crass manners, crass landscape! What a horror it is for a whole nation to be developing without the sense of beauty, and eating bananas for breakfast.”


-Edith Wha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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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25:20

메모 2015. 1. 25. 14:31

Oh keep my soul, and deliver me: Let me not be put to shame, for I take refuge in thee

Psalm 25:20

 

 


 

Just let me be alone in what would be cold and forbidding universe. Slowly will I be torn.

 

이 세계의 모든 당신들에게 미움 받기 전에, 아름답게 이별하고 싶었어요. 하고, 유서를 남기게 된다면,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성들인 필체로 적어 놓야아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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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장 없이 살 수 있을까」, 고예솔


예전에는 돈만 보고 사는 삶이 불행하고 실패한 삶이라는 어떤 확신이 있었다.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없었다면 학벌을 떠나 자유롭게 살리라는 결심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하지만 가난이 행복을 가리는 막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조촐하게 먹고살 만큼'의 돈도 없게 되면? 나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 너무 불행한데 돈이 없으면 고기를 먹을 수 없듯 말이다. pp.49-50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에서 오는 기쁨은 엄청난 것이다. 사람들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으면 사회 암적인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삶으로서는 말이다. 연말 인사로 '올해도 살아남은 것에 건배합시다'라는 말이 흔하게 오가는 세상인데 쓸데없는 불안을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것, 나를 위한 시간을 더 갖는 것이 뭐 어떤가. 내일 죽어도 억울하지 않은 삶을 실현하면서 살면 안 되는 걸까? p.58

 

김해솔,「원하는 건 자유」

 

나도 규칙적인 삶을 동경했던 적이 있다. 하루 8~10시간 일하고, 취미나 여가를 통해서 만족을 얻는 삶. 많은 돈을 마구 벌지 못하더라도 지금보다는 풍족할 것이고, 청소년인권운동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분명 여가를 위한 시간도 꽤 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동경이고, 그 동경은 언제나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내가 이것과 가장 비슷한 생활을 하던 때가 학교에 다닐 때였고, 나는 그 규칙적인 생활에 전혀 행복하지 못했다. 그때는 돈이 부족한 일도 많이 없었고, 조금만 무리하면 여가 시간을 내는 것도 가능했지만, 내가 적응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떠야만 하는 게 너무 싫었고, 학교에 앉아 있는 시간은 너무 지루했다. 학교가 인권 침해의 온상인 것과 별개로, 그냥 매일 거기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삶의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규칙적인 삶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중략) 그런 나에게 청소년인권운동은 한국의 교육, 경쟁, 학문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했고, 거기에서 뛰쳐나오게 했으며, 가정으로부터의 독립을 실행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독립은 임노동의 시작을 의미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덕분에 이후의 삶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알바라는 자의 반 타의 반의 선택을 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난 왜 이렇게 살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pp.90-91

 

그는 내가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는 이곳, 선물의 집 매장을 주 6일, 하루 10시간 반 동안 지킨다. 이 생활을 한 지 두 달 가까이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알바하며 만난 관리자들 중에 제일 '관리자 느낌'이 덜 나는 관리자였는데, 나한테 굉장히 솔직하게 "10시간 일하면 멍 때리고 있을 때가 더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해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매장의 유일한 매니저이고 발주부터 알바의 급여 관리까지 거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여기서 파는 물건들 사실 잘 모르고, 적당히 내 맘대로 하고 있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그런 것 치고 굉장히 능동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물건 배치나 데코레이션 같은 부분에서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꼼꼼함을 보여 줬다. 딱 집어 어떤 부분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녀한테 어떤 종류의 존경심을 가지게 됐다. 내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알바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설렁설렁 하게 되는 나와 달리, "설렁설렁 한다"고 말하면서도, 별로 자기 취향이 아니라면서도, 하루 종일 오롯이 매장을 지키는 건,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중략) 그녀에게도 이 매장을 관리하는 것은 본사의 일을 대신 해 주는 것이고, 자신의 자아실현과는 하등 관련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일에 자신을 밀착시킬 줄 알았다. 나한테는 없는 종류의, 정확히 말하면 훈련되지 않은 능력인 것이다. pp.91-92


「이 미친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정열음

 

사실 대학에 간다고 불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대학이 주는 대학생이라는 타이틀과 스펙,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과 4년이라는 (또는 그보다 긴) 시간, 소속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차별을 만드는 역할도 한다. 대학 안쪽과 대학 바깥의 차별을 만들고, 대학 사이의 차별을 만든다. 그리고 보통은 그 모든 차별에서 승리한 사람만이 성공한 소수에 들 수 있다. 그 안에 들 거라는 확신을 모두가 가질 수는 없다. 희망일 뿐이지 확신은 아니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아니니까. pp.107-108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먹고살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어 간다면, 아무리 가난해도 어떻게든 굶어 죽지 않도록 '함께' 살아간다면 덜 불안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건 대학을 가기 위해 12년간 홀로 노력하는 것보다 쉽고 간단한 일이지 않을까.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의 생존법이다. p. 112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아」, 박고형준

 

아직 선택의 폭이 넓은 청소년이 이런 대안적인 삶을 살아 간다면 어떨까. 예컨대 학교 밖 교육공동체를 만들어 학습한다든지, 대안대학교를 설립한다든지,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어 노동하며 생계를 유지한다든지, 삶의 가치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공동생활이나 공동경작을 한다든지……. p.126

 

「못난 이대로 살아갈 수 없다면」, 김남미


맨 처음 알바를 한 곳은 하필 홍대에서도 장사 잘되기로 유명한 고깃집이었다. 고깃집 알바는 그 명성대로 더럽게 힘들었다. 그릇 종류가 많아서 한 번에 수거해 가려면 머리를 써서 쌓고 또 쌓기 전법을 통해 상을 치워야 했는데, 여기에 노이로제가 걸렸는지 밤마다 전략적으로 상을 치우는 꿈을 꿨다. 아침에 일어나면 억울했다.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일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뭔가. 제일 싫은 건 이 꿈을 꾸고 또다시 일하러 가야 했다는 거! 그럴 땐 진짜 울고 싶었다. 한번은 서빙 쉬는 틈에 컵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한 손님이 다가와 "내 딸이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고생하는 게 안쓰럽구나" 그러고는 만 원짜리 하나를 손에 쥐어 주고 가셨다. 처음에는 바로 돌려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 못한 건 이 시퍼런 종이 쪼가리 한 장이 내가 여기서 일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2시간으로 보여서였다. 과장이 아니라, 거기서 일할 땐 5분이 무슨 1시간처럼 느껴졌다. pp.132-133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대학 문턱을 밟지 못하셨다. 두 분 중에서도 엄마는 초등학교도 다니다 말고, 중학교까지만 검정고시로 마치셨다. 엄마는 집안이 어려워진 이후부터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내가 한창 고깃집, 부대찌갯집 등에서 서빙 알바를 하던 시절에 우리 엄마는 너도 나랑 똑같은 일을 한다고, 동질감을 느끼면서 좋아했다. 그러다 내가 책상맡에서 일하게 된 후에는 너는 힘든 일 안 해서 좋겠다며 애처럼 부러워했다. 하기야 우리 엄마는 나 어렸을 때부터 학교 졸업하면 공장가서 경리로 취직하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무슨 엄마가 딸한테 공장 경리를 하래. 딸한테 그 정도 기대밖에 못 하는 엄마가 어릴 땐 이해가 안 갔고, 나중 들어서는 슬펐다. (중략) '엄마 말이 맞네, 내 머나먼 미래는 지금의 엄마일 수도 있겠구나.'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물려준다. pp.138-139

 

학벌사회를 비판하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대학에 속해 있다. 그들은 대학생이거나 대학 강사거나 대학 교수다. 교육 레벨은 물론 높다. 가끔 공부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제라도 대학에 가 보라는 권유를 듣거나, 대학이 가진 장점들을 듣게 될 때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학교는 계급 재생산의 도구라며? 고등학교까지만 그런 거야? 대학은 아니야? 대학이 돈만 아는 기업이 되었다며? 근데 왜 자꾸 가래? 원래의 기능이야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른다. 현재의 대학은 불평등한 분배를 정당화하는 기관으로서 기능한다. 이 정당화의 밑바탕에는 대학이 가진 지적인 권위와 대학생을 '정상적인 인재'로 인정하고 채용하는 시장과의 제도적인 합의가 깔려 있다. '지적 권위', '인재 인증'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대학이라는 기관의 사회적 신뢰와 실질적인 영향력을 형성한다. pp.1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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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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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the wild beasts, she lives without a future. She inhabits only the present tense, a fugue of the continuous, a world of sensual immediacy as without hope as it is without despair.

 

야생동물처럼 소녀는 미래 없이 살아간다. 오직 현재 시제만 존재한다. 진행형의 기억상실 상태, 절망이 없듯 희망도 없는 즉각적 감각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Angela Cater, <Wolf-Al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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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별기

메모 2014. 11. 4. 11:34

금홍이는 역시 초췌하다. 생활 전선에서의 피로의 빛이 그 얼굴에 여실하였다.
"내눔 하나 보구져서 서울 왔지 내 서울 뭐허러 왔다니?"
"그리게 또 난 이렇게 널 찾어오지 않았니?"
"너 장가갔다더구나."
"얘, 디끼 싫다, 그 육모초 겉은 소리."...
"안 갔단 말이냐, 그럼?"
"그럼."
당장에 목침이 내 면상을 향하여 날아 들어왔다. 나는 예나 다름없이 못나게 웃어 주었다.
술상을 보아 왔다. 나도 한 잔 먹고 금홍이도 한 잔 먹었다. 나는 영변가를 한마디 하고 금홍이는 육자배기를 한마디 했다.
밤은 이미 깊었고 우리 이야기는 이게 이 생에서의 영이별이라는 결론으로 밀려 갔다. 금홍이는 은수저로 소반전을 딱딱 치면서 내가 한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질러 버려라, 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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