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장 없이 살 수 있을까」, 고예솔


예전에는 돈만 보고 사는 삶이 불행하고 실패한 삶이라는 어떤 확신이 있었다. 가난하고 소박하게 살겠다는 다짐이 없었다면 학벌을 떠나 자유롭게 살리라는 결심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이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하지만 가난이 행복을 가리는 막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조촐하게 먹고살 만큼'의 돈도 없게 되면? 나는 고기를 먹지 않으면 너무 불행한데 돈이 없으면 고기를 먹을 수 없듯 말이다. pp.49-50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에서 오는 기쁨은 엄청난 것이다. 사람들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으면 사회 암적인 존재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삶으로서는 말이다. 연말 인사로 '올해도 살아남은 것에 건배합시다'라는 말이 흔하게 오가는 세상인데 쓸데없는 불안을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것, 나를 위한 시간을 더 갖는 것이 뭐 어떤가. 내일 죽어도 억울하지 않은 삶을 실현하면서 살면 안 되는 걸까? p.58

 

김해솔,「원하는 건 자유」

 

나도 규칙적인 삶을 동경했던 적이 있다. 하루 8~10시간 일하고, 취미나 여가를 통해서 만족을 얻는 삶. 많은 돈을 마구 벌지 못하더라도 지금보다는 풍족할 것이고, 청소년인권운동을 병행하지 않는다면 분명 여가를 위한 시간도 꽤 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동경이고, 그 동경은 언제나 현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내가 이것과 가장 비슷한 생활을 하던 때가 학교에 다닐 때였고, 나는 그 규칙적인 생활에 전혀 행복하지 못했다. 그때는 돈이 부족한 일도 많이 없었고, 조금만 무리하면 여가 시간을 내는 것도 가능했지만, 내가 적응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에 눈을 떠야만 하는 게 너무 싫었고, 학교에 앉아 있는 시간은 너무 지루했다. 학교가 인권 침해의 온상인 것과 별개로, 그냥 매일 거기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삶의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규칙적인 삶은 나에게 맞지 않았다. (중략) 그런 나에게 청소년인권운동은 한국의 교육, 경쟁, 학문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했고, 거기에서 뛰쳐나오게 했으며, 가정으로부터의 독립을 실행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독립은 임노동의 시작을 의미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덕분에 이후의 삶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알바라는 자의 반 타의 반의 선택을 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난 왜 이렇게 살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pp.90-91

 

그는 내가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는 이곳, 선물의 집 매장을 주 6일, 하루 10시간 반 동안 지킨다. 이 생활을 한 지 두 달 가까이 된다고 했다. 지금까지 알바하며 만난 관리자들 중에 제일 '관리자 느낌'이 덜 나는 관리자였는데, 나한테 굉장히 솔직하게 "10시간 일하면 멍 때리고 있을 때가 더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해서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매장의 유일한 매니저이고 발주부터 알바의 급여 관리까지 거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었지만, "여기서 파는 물건들 사실 잘 모르고, 적당히 내 맘대로 하고 있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그런 것 치고 굉장히 능동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물건 배치나 데코레이션 같은 부분에서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꼼꼼함을 보여 줬다. 딱 집어 어떤 부분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녀한테 어떤 종류의 존경심을 가지게 됐다. 내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알바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설렁설렁 하게 되는 나와 달리, "설렁설렁 한다"고 말하면서도, 별로 자기 취향이 아니라면서도, 하루 종일 오롯이 매장을 지키는 건,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중략) 그녀에게도 이 매장을 관리하는 것은 본사의 일을 대신 해 주는 것이고, 자신의 자아실현과는 하등 관련이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일에 자신을 밀착시킬 줄 알았다. 나한테는 없는 종류의, 정확히 말하면 훈련되지 않은 능력인 것이다. pp.91-92


「이 미친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 정열음

 

사실 대학에 간다고 불안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대학이 주는 대학생이라는 타이틀과 스펙,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과 4년이라는 (또는 그보다 긴) 시간, 소속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대학은 차별을 만드는 역할도 한다. 대학 안쪽과 대학 바깥의 차별을 만들고, 대학 사이의 차별을 만든다. 그리고 보통은 그 모든 차별에서 승리한 사람만이 성공한 소수에 들 수 있다. 그 안에 들 거라는 확신을 모두가 가질 수는 없다. 희망일 뿐이지 확신은 아니다. 성공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아니니까. pp.107-108

 

누군가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먹고살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만들어 간다면, 아무리 가난해도 어떻게든 굶어 죽지 않도록 '함께' 살아간다면 덜 불안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건 대학을 가기 위해 12년간 홀로 노력하는 것보다 쉽고 간단한 일이지 않을까.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의 생존법이다. p. 112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아」, 박고형준

 

아직 선택의 폭이 넓은 청소년이 이런 대안적인 삶을 살아 간다면 어떨까. 예컨대 학교 밖 교육공동체를 만들어 학습한다든지, 대안대학교를 설립한다든지,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만들어 노동하며 생계를 유지한다든지, 삶의 가치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공동생활이나 공동경작을 한다든지……. p.126

 

「못난 이대로 살아갈 수 없다면」, 김남미


맨 처음 알바를 한 곳은 하필 홍대에서도 장사 잘되기로 유명한 고깃집이었다. 고깃집 알바는 그 명성대로 더럽게 힘들었다. 그릇 종류가 많아서 한 번에 수거해 가려면 머리를 써서 쌓고 또 쌓기 전법을 통해 상을 치워야 했는데, 여기에 노이로제가 걸렸는지 밤마다 전략적으로 상을 치우는 꿈을 꿨다. 아침에 일어나면 억울했다.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일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뭔가. 제일 싫은 건 이 꿈을 꾸고 또다시 일하러 가야 했다는 거! 그럴 땐 진짜 울고 싶었다. 한번은 서빙 쉬는 틈에 컵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한 손님이 다가와 "내 딸이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고생하는 게 안쓰럽구나" 그러고는 만 원짜리 하나를 손에 쥐어 주고 가셨다. 처음에는 바로 돌려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 못한 건 이 시퍼런 종이 쪼가리 한 장이 내가 여기서 일해야 하는 무시무시한 2시간으로 보여서였다. 과장이 아니라, 거기서 일할 땐 5분이 무슨 1시간처럼 느껴졌다. pp.132-133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대학 문턱을 밟지 못하셨다. 두 분 중에서도 엄마는 초등학교도 다니다 말고, 중학교까지만 검정고시로 마치셨다. 엄마는 집안이 어려워진 이후부터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내가 한창 고깃집, 부대찌갯집 등에서 서빙 알바를 하던 시절에 우리 엄마는 너도 나랑 똑같은 일을 한다고, 동질감을 느끼면서 좋아했다. 그러다 내가 책상맡에서 일하게 된 후에는 너는 힘든 일 안 해서 좋겠다며 애처럼 부러워했다. 하기야 우리 엄마는 나 어렸을 때부터 학교 졸업하면 공장가서 경리로 취직하라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무슨 엄마가 딸한테 공장 경리를 하래. 딸한테 그 정도 기대밖에 못 하는 엄마가 어릴 땐 이해가 안 갔고, 나중 들어서는 슬펐다. (중략) '엄마 말이 맞네, 내 머나먼 미래는 지금의 엄마일 수도 있겠구나.'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물려준다. pp.138-139

 

학벌사회를 비판하는 진보적인 사람들도 대학에 속해 있다. 그들은 대학생이거나 대학 강사거나 대학 교수다. 교육 레벨은 물론 높다. 가끔 공부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제라도 대학에 가 보라는 권유를 듣거나, 대학이 가진 장점들을 듣게 될 때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학교는 계급 재생산의 도구라며? 고등학교까지만 그런 거야? 대학은 아니야? 대학이 돈만 아는 기업이 되었다며? 근데 왜 자꾸 가래? 원래의 기능이야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른다. 현재의 대학은 불평등한 분배를 정당화하는 기관으로서 기능한다. 이 정당화의 밑바탕에는 대학이 가진 지적인 권위와 대학생을 '정상적인 인재'로 인정하고 채용하는 시장과의 제도적인 합의가 깔려 있다. '지적 권위', '인재 인증'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대학이라는 기관의 사회적 신뢰와 실질적인 영향력을 형성한다. pp.14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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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y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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